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칼럼

제목

나도 엄마가 처음이야...

작성자
관리자
작성일
2018.04.25
첨부파일0
조회수
2236
내용

나도 엄마가 처음이야...


안 희정

주말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가려다가 공연을 보기로 하고 뮤지컬을 남편과 함께 보러갔다. 이미 많은 주부들이 보고 좋은 평을 얻은 뮤지컬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평을 잘 모르고 갔다. 당일이라 현장 예매만 가능하다고 해서 조금 일찍 간단한 저녁 도시락을 싸서 그 앞 공원에서 먹고 공연장에 갔다. 갱년기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이었는데 보는 내내 웃음과 공감을 이끌었다. 나 역시 갱년기가 확 온 것은 아니었지만 몇 가지 증후들이 가끔 나타나고 있고 곧 몇 년 후면 다가올 것을 알고 보니 약간의 걱정도 되었다.

주인공인 4명의 여성은 각자의 삶 속에서 걱정과 슬픔과 기쁨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우리네 여성들의 이야기였다. 아이들의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고 내 인생이 무엇이었나? 하는 허탈감에 가끔 빠지고 너무나 익숙해진 남편과의 일상, 늘어나는 살, 노후에 대한 걱정,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연민과 경제적인 어려움, 관절염 및 오십견, 우울증, 다른 몸의 증상들, 자녀들의 공부와 진로에 대한 걱정 등. 이 모든 것을 웃음 짓게 만드는 대사와 춤, 노래를 통해 강결하고 즐겁게 관객에게 전달했다.

남편과 나는 끊임없이 웃고 감동받았다. 그러면서 은근 내 갱년기가 걱정 되었다. 안 그래도 친한 선생님이 갱년기로 몸에 열이 많이 난다고 하셨고 얼굴에 홍조가 생겼다고 해서 같이 걱정을 한 일이 몇 달 전에 있었기 때문에‘언젠가 나도 저런 일을 겪겠구나!’하는 걱정을 했는데 뮤지컬을 보니 더 선명하게 보였다.

극의 대사 중 한 여성의“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줄 알았다”라는 대사에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고여 내 뺨을 조용히 흘러내리고 있었다. 어쩜 나도 나의 엄마가 그런 줄 알았을 지도 모른다. 이젠 내 딸이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.

극을 보면서 이런 말이 내 마음에 올라왔다.‘딸아. 나도 엄마가 처음이야. 나에게도 아동기, 청소년기가 있었고 여러 문제를 고민했던 대학시절과 청년시절이 있었어.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었단다. 나도 엄마가 처음이야. 그래서 너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도 듣고 배우려 했지. 그래도 미숙한 부분이 많았을 거야.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말이 있지? 하물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고 양육하는 일인데 그 많은 이론이 딱딱 들어맞는다고는 생각 안 한단다.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관계에 좋은 것들이 있고 그렇게 마음가짐을 가지면 더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도 나는 너와 관계가 좋다고 생각해. 고 3까지 좋게 지낸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. 딸아 엄마도 엄마역할이 처음이야’

누구든 처음 부모가 되면 그 역할을 처음 해 보기 때문에 설레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잘 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자녀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고, 보이고 싶고, 들려주고 싶고, 해 주고 싶고 그랬을 것이다. 이것이 한 해, 두 해 가고 익숙해지다 보니까 조금 마음을 놓고 소홀하기도 했고, 그냥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기도 했고, 아님 더 열심히 열중해서 부모역할을 하다보니 아이가 갑갑하다 할 정도로 간섭하고 코치하고 가르치고 그랬는 지도 모른다. 그런 사이 우리들은 나이가 점점 들어갔고 아이는 점점 커 갔다. 그렇게 어느새 시간이 지나가버렸고 지금이 되었다.

상담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‘도대체 이 아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듣고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왔을까?’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. 잘 못 먹은 것은 토해 내면 그만이다. 최근에 급체 한 적이 있다. 그 날 맛있게 저녁을 먹었는데 밤이 되니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. 속이 울렁거리더니 뭐가 올라온다. 화장실로 급행. 그 날 밤새도록 아팠었다. 딸이 어느새 컸다고 내 등을 치며 속이 가라앉도록 도왔다. 든든했다. 남편은 전날 피곤한 일이 있어 깨우질 않았다. 깨운다고 아픈 것이 가라앉는 것도 아니고. 이렇듯 실제로 맛있게 먹었는데도 체 할 경우가 있다.

그런데 정서적으로 체하고 체한 데 다시 쌓이고 한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?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째 체 한 상태라면 그래서 그런 여러 증상들을 자녀가 가지게 되었다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? 물론 부모 몫 만 이라고는 할 수 없다. 아이 자체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하거나 상황이 나빠서도 있을 것이다. 그래도 부모가 체한 상태를 알아보고 도와줄 수 있어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신경해서 또는 알고 싶지 않아서 형편이 안 되서 등 여러 이유를 대서 자녀를 모른 채 한다면 훗날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.

부모 역할이 처음이라서 시행착오를 했다면 첫 째 말고 둘 째, 또는 셋 째는 잘 양육해야 할 텐데.. 자녀가 지금 정서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시길 바란다. 부모로서 가졌던 초심을 기억하며 진자리, 마른자리 잘 가려서 할 말, 안 할말 잘 가려서 하고 있는지, 할 행동, 안 할 행동 잘 선택해서 자녀에게 하고 있는 지를 말이다.

부모 역할이 현재 몇 년째 인가? 생각해 보자. 처음은 처음이라 그렇다고 하지만 해가 더 갈수록 좋아져야 할 것 같은데 부모- 자녀 관계가 해가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 진다면 분명 무엇인가 잘 못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? 점검해 보아야 한다. 부모 역할이 처음 해 보는 역할이었지만 해가 더 갈수록 노하우라는 것이 생겨 부모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.

부모 전문가라고나 할까? 자녀를 많이 두었다고 해서 부모 전문가는 아닐 것이다. 내 자녀와 관계가 좋고 부모 역할이 즐겁고 흥미있으며 때론 힘들지만 그래도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있다면 그대는 분명 부모 전문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. 발달 마다 그 이름이 있어서 유아기, 유치기, 아동기, 청소년기, 청년기, 성인기의 부모 전문가가 있다. 당신은 지금 어느 시기의 부모 전문가의 길에 접어들었는지 그 역할을 잘 해 내고 있는지. 지난 시기 잘 못한 것이 있다면 다음 시기를 잘 해 볼 생각을 갖고 계신지. 아직 부모 역할 시기가 많이 남았다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운동화 끈 매고 걸어가실 생각은 있는지?

분명 나는 엄마가 처음이었다. 그리고 지금 나는 엄마로 살아온 지 19년째 다. 각 시기 시기 딸은 나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 아이로 인해 행복감을 더 느끼며 살아왔다. 다시 돌아가 엄마역할을 잘 했으면 하는 시기도 없다.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(딸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). 남은 시기의 엄마 역할을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은 난다. 친구 같은 엄마로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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